어쨌든, 난생 처음 열시간을 넘게 날아 영국에 도착했다. 영국을 첫 행선지로 정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약 두달간 유럽을 한바퀴 돌 예정이다 보니, 지도상의 왼쪽 위인 영국에서 시작해서 오른쪽 아래쯤인 로마에서 마무리하는게 적당해 보였고, 정해진 기간동안 유럽 대륙에서 자유롭게 쓸수있는 유레일 티켓은 영국에서는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영국 여행을 처음에 하고 나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편이 훨씬 유리했다. (물론 그 반대 순서도 가능했겠지만 반시계방향 루트는 왠지 뭔가 틀린듯한 느낌이다.) 또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시작하는 편이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처음 적응하기에 수월할것 같았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지 26년만에 처음 만난 서양은 런던 히드로 공항이었다. 아직 별 감흥은 없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첫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떠났던 나는, 나리타 공항의 인터넷 단말기에서 찾은 런던 1존 민박에 공중전화로 전화를 했다. 공항 내부에서 바로 연결된 지하철을 타고, 좁은 튜브 내부와 처음 본 영국인들의 모습에 어색해하며 내린곳은, 런던의 한가운데 있는 빅토리아 스테이션. 아직 밖으로 나와보지도 못하고, 바로 환승을 해서 한 정거장 후 내린 곳은 민박집이 있다는 핌리코 역. 그곳에서야 겨우 밖으로 나와, 생후 처음으로 서양의 땅을 밟고, 특유의 햇빛을 맞았다.
핌리코 역에서 민박이 있는 아파트까지 걸어가던 십여 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어느 학교 앞을 지나갔고, 농구를 하는 학생들을 보았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축구장에서 노는 아이들, 외부 계단으로 반층 올라가서 진입하는 주택들, 앞쪽 땅이 깊게 파여있어 빛이 잘 드는 반지하 창문들, 둥글둥글한 자동차들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무엇보다 세상 어디서나 같을법한 햇빛과 공기, 그 반사되는 빛의 질감조차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적응에는 그렇게 많은 날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 동양과 서양이 충돌한 그날의 첫 한 시간은 나에게 잊혀지지 않을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