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 2002.05.21

출발

... 그렇게 2002년 5월의 어느날 나는 처음으로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은 일본 경유 영국행 이었으므로 일단은 일본행 비행기였다. 당시에 서울에서 유럽으로 가는 가장 저렴한 항공편은 대개 나리타 공항이나 간사이 공항을 경유하는 일본항공 할인티켓 이었는데, 보통 경유 공항과 연결된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유럽으로 향하는 왕복 티켓이 70만원 쯤이었다. 나는 일본도 처음이고, 호텔도 무료라서 경유를 하는게 오히려 좋았다. 그 호텔방의 화장실에서 처음 본 완벽한 줄눈 계획과 모든 타일의 사이즈가 설치물들과 맞아 떨어지는 일본 건축의 설계와 시공을 보고 감탄하며 여러 장의 화장실 사진을 찍어왔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흔한 조립식 욕실 모듈이었던 것 같다.

이 여행을 앞두고 준비한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카메라였다. 당시 처음 유행하기 시작한 컴팩트 카메라에 겨우 64MB 쯤 되는 메모리 카드 하나만을 가져갔기에, 사진은 최대한 작게 찍어야 했다. 아직 해상도와 메모리 용량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는 그 사진들이 출력을 하기에도, 컴퓨터 화면에서도 너무 작다는 사실과, 메모리 카드 한두장 더 사는데 투자를 아끼지 말았어야 했다는 사실을 여행이 끝날때 쯤에야 알게되었다. 그러나 24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보정도 AI 업스케일링도 하지 않은 날것의 옛날 640 x 480 픽셀 사진들이 더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